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 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 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중략>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여승 이해인이 쓴 ‘12월의 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 어느새 한해의 끄트머리에 와 있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술술 빠져 나가듯 365일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순식간에 흘러가고 있다.

바야흐로 연말이다. 송년회의 시즌이다. 같이 보낸 한 해를 서로에게 감사하고 또 새로운 한해에도 잘 지내보자는 의미의 송년회이지만 빼곡하게 적혀가는 달력위 송년회 약속들을 바라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올 때도 있을 것이다.

언제나 연말이면 송년회 등 각종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한 해를 편안하게 마무리하자는 취지로 열리는 자리들이지만 정작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피곤하고 지쳐있는 경우가 많다. 매일 저녁 술자리로 이어지기도 하고, 하루에 서너 개의 행사가 겹치는 바람에 얼굴만 잠깐씩 비추고 나와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술자리에서처럼 편하게 얘기해 보자.

소주 한 잔 들이키면 저절로 ‘캬~’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로 술자리 추임새다.

혹자는 말하기를 술은 인간에게 이롭지 않다고 했다. 정신을 흐리게 하고 몸을 상하게 한다고…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도 주장한다. 술을 마심으로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은 그 속에 맑음이 있는 것이고 몸이 피곤해지는 것은 그 속에 굳건함이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 소주가 그런 추임새는 기쁨이 되었고 슬픔은 눈물이 되어 술자리에 떨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소주에서 ‘캬~’ 소리가 사라졌다. 소주가 어느 사이 묽어 졌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20도 이하로 떨어진 지 꽤 오래되었다.

최근에는 사람들의 혀를 가장 많이 꼬부라지게 만들었던 최대 소주 업체가 맛과 모양을 완전히 바꾼 소주를 선보였다.

이상한 것은 도수와 맛이 현저하게 다른 술인데도 업자들은 소주라고 내놓는다. 사전적 의미에서 분명 ‘소주는 알코올 성분이 20~35%’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왜 20도 이하로 내려갔으면서도 소주라고 이름 하여 팔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네 주권은 이렇게 무시당하고 있다. 소주는 하루에 적게 잡아도 수백만 명이 마시는 국민주임에 틀림없다. 그런 국민주가 맛과 도수가 하루아침에 바뀌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주가 묽어지니 여러 문제들이 파생된다. 우선 평소대로 취기가 오르려면 술을 훨씬 더 많이 마셔야 한다. 도수는 내리고도 술값을 올렸으니, 도수 낮춤은 사실상 술값을 이중으로 올린 셈이다.

장시간 마셔야하니 안주 값이 더 들어간다. 술이 ‘만만’하니 여성음주인구가 늘어난다. 소주의 도수 낮춤은 서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준다. 우선 술값 인상이나 다를 바 아니라. 안주값 인상, 밤 늦은 교통비, 여성들의 술값 추가 지출 등은 직접 손실이다.

돌아보면 지난 세월은 얼마나 험난했는가. 어디 눈물 마를 날이 있었는가. 우리의 눈물과 탄식, 그래서 나온 노래와 탄식은 소주잔에 떨어졌다. 우리 젊은 날의 추억은 30도와 25도의 소주 속에 녹아 있다. 올 겨울이 지나면 분명 봄이 오겠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공허할 뿐이다. 어려운 시절 속에 얼어 있는 우리네 마음은 언제 녹을 수 있을까. 끝이 보이는 속 시원한 소식은 요원하다.

이 땅의 정치가 오직 국민을 위한 정치로 발전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는 일이 팍팍하니 옛날 그 소주 맛이 간절하다. 올해 송년회는 ‘캬~’ 소리 내며 마시고 싶다. 그것이 소주의 향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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