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월) 저녁,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이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1년 간의 투병 생활 끝에 더 이상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재를 털어서 자신이 세운 수원 아주대학교 병원에서 영면에 들었다고 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밝혔다.

언론에서는 비운(悲運)의 경영인, 세계경영의 기업인 등 김 전 회장에 대한 추모와 행적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1936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김 전 회장은 한국전쟁으로 부친이 납북된 이후 서울로 올라와 당시 명문 학교인 경기중과 경기고를 거쳐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김 전 회장은 만 30세인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1979년 새한자동차 회장, 1982~1999.11. 대우그룹 회장, 1999. 2~1999.10. 제25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한국축구협회장, 한국기원 총재 등을 역임했다. 김 전 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우뚝 섰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부도덕한 경영자로 내몰리는 등 영욕(榮辱)의 세월이 점철됐다. 그가 일군 대우그룹은 한때 현대그룹에 이어 자산규모 21조, 2위에 올랐으나 1999년 과다한 부채와 유동성 부족으로 해체됐다. 근래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글로벌 청년 경영인들을 양성하는 일을 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큰 사업을 하자면 정치인과의 인연이 중요 변수가 되는 수가 많다. 사업 초기 김 전 회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밀월(蜜月)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보고서에도 담겼을 정도다. 2017년 기밀 해제된 CIA의 ‘한국: 과도기의 경제적 의사결정’ 문건에는 김 전 회장과 관련 ‘대우의 성공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 전 회장의 각별한 관계에 따른 개인적 도움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문건은 ‘각별한 관계’가 김 전 회장의 선친 때부터 시작됐다고 봤다. 김 전 회장의 선친인 우당 김용하 선생은 대구사범학교 교사를 지냈는데,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그의 제자였다.

김 전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한 때, 정경 유착(癒着)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큰 나무는 그늘도 크고 짙은 법이다.

시골 출신으로 1970년대에 서울에서 어렵게 대학을 다닌 나는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하여 생각나는 추억이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방에서 가장 좋은 새마을 열차는 비싸서 못타고, 무궁화 열차나 비둘기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리면 서울역 앞에 떡 버티고 서있는 거대한 대우그룹빌딩을 바라보는 충격과 신선함이다. 서울에도 고층빌딩이 드문 시절에 ‘잘 살아 보세’ 경제 개발의 상징처럼 서울역 정문을 나서는 국민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둘은 오래 전 어느 모임에서 몇 차례 만나서 명함을 주고 받으며 인사한 기억이 있다. 몇 년도 어느 모임인지는 기억에 없다. 하얀 백발에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百戰老將)의 비범한 풍모를 잊을 수 없다. 수십 권의 명함철을 모두 찾으면 김 전 회장의 명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전셋집을 전전하느라고 책과 짐이 많아서 고향으로 보내서 알 수 없는 박스 속에 들어 있다. 셋은 그의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와의 만남이다. 그 책을 읽고 시야를 넓히는 많은 감동을 받아서 책을 사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많이 선물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했던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처럼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자도 맨주먹으로 도전하여 수많은 시련과 실패를 마침내 이겨내고 신화를 창조한 인물들이다. 김 전 회장은 한 시대를 주도했던 사업가, 한 때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경영인, 대우그룹은 해체되었지만 개발도상국가의 힘든 시절에 ‘세계 경영’의 당찬 꿈과 도전과 용기를 국민들 가슴 속에 심어준 위대한 선구자였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깊은 애도를 보낸다.

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