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은 피어나는데, 미세먼지는 하늘을 덮고
김윤호 논설위원·행정학 박사·국회출입기자포럼 회장 입력 : 2019. 03. 19(화) 16:22
3월 중순, 남녘에는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노란 유채꽃, 붉은 홍매화가 피어나는데, 하늘엔 미세먼지가 희뿌였다.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온다고 믿는데, 중국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봄비에 얼음이 녹는다는 우수(雨水, 2월 18일)도 지나고, 땅 밑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도 뛰쳐나온다는 경칩(驚蟄, 3월 5일)도 지나고, 내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봄기운이 무르익는다는 춘분(春分)이다.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春似春)이 생각나는 환절기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하고 혼돈과 격변의 격랑(激浪)에 휩싸여도 자연의 순환은 멈추지 않는다. 인간 세상이 평화롭던, 전쟁 중이던 관계없이 계절은 어김없이 흘러가고 어김없이 찾아온다. 유수(流水)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인간들은 덧없는 삶을 바라볼 뿐이다. 누구도 붙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무정한 세월 앞에서 인간들은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절감한다.

쏜 화살처럼, 돌아가는 물렛살처럼 눈 깜작할 사이에 흘러가는 세월 앞에 모든 존재는 허무하고 무상하다. 이토록 허무하고 허망한 삶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잠시 번쩍하는 번개불처럼,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짧으면서도 단 한 번뿐인 생(生)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크고 작은 수많은 문제 속을 헤치며 살아가야 한다. 바닷가의 파도처럼 쉴 사이 없이 밀려오는 삶의 문제들은 우리를 고뇌와 좌절, 상처를 안겨주기 쉽다. 고통과 패배를 맛보게 한다.

끝없이 밀려오는 위태로운 그 사이에서 편안함을 취하고 자기의 길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서 목표 지점에 도착하는 자는 위대하다. 도종환 시인의 시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꽃들도, 풀잎들도, 나무들도, 사람들도 모두 바람에 흔들리고, 비바람에 가지가 꺾기기도 하고 비에 젖어 주저앉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위대함은 시련과 절망의 수렁에 빠지더라도 힘을 내서 일어나고 또 일어나서 앞으로 걸어가는 힘이다.

모두가 지치고 불가능하다고 단념할 때, 희망과 신념을 갖고 분연히 일어나서 조용히 자기의 길을 가는 자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것은 기적이고 축복이다. 영양분이 적은 척박한 산비탈에 서 있는 나무가 더욱 아름다운 진홍(眞紅)빛 단풍을 피워낸다.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역경(逆境) 속에서 더욱 강력한 극복 의지와 성취동기를 불태우는 생명력이 신비롭기만 하다.

세월이 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자연은 신비롭고 위대하다는 것을 더욱 깨닫는다.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한다. 바다나 산이나 대자연은 말이 없다. 소리가 없다. 소리 없이 자기의 일을 한 치도 오차(誤差)없이 실행한다. 허공에 떠서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하는 지구를 생각해 보라. 참으로 무섭도록 정밀하다. 그리고 대자연은 거짓이 없다. 뿌리는 대로 거둔다. 대자연은 모든 것이 진실이요, 사실이요, 진리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큰소리치기 좋아하고, 남 앞에서 과시하기를 좋아한다. 머릿속은 냄새나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겉은 화려한 옷으로 포장하고 그럴듯한 말로 사람을 유혹한다. 이기심과 거짓, 교만과 외식(外飾)은 끝이 없다. 여기에 인간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칫 남의 의견이나 남의 이익, 남의 종교, 남의 인종, 남의 나라, 남의 이념은 완전히 틀렸다고 배척하고 없애버릴려고 하는 배타심과 적대감으로 무장하여 끝없는 갈등과 투쟁을 하게 된다.

편협한 이기심과 질투, 배타적 연대(連帶)는 지역의 동네 작은 모임에서부터 정당, 국가, 민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각종 조직에서 동서양을 통하여 공통된 문제였다. 힘이 없거나 약한 자는 힘이 강해지기를 바라고, 그 힘이 강해지면 약자를 괴롭히고 침탈한다. 수천 년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약자들이 얼마나 많은 압박과 설움, 고통과 억울함을 당했을까. 강자가 권력과 금력을 손아귀에 쥐게 되면 무적의 불패(不敗) 강자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다행히 영원할 수는 없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고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21세기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억울한 사건들과 문제들이 쌓여 있다. 3월 10일부터 6박 7일 동안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 순방을 끝내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최근 국민적 의혹이 일고 있는 강남의 버닝썬(burning sun) 사건, 장자연 사건, 김학의 법무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과 관련해 검찰과 경찰이 조직의 명운(命運)을 걸고 철저하게 수사하고 사법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 버닝썬 사건에 52만 명, 장자연 사건 재수사에 64만 명이 동참할 정도로 국민적 의혹이 큰 점이 고려되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재수사를 포함해 모든 수단을 통해 진실을 가리겠다고 밝혔다.

버닝썬, 장자연, 김학의 사건의 공통점은 권력과 금력이 결탁하여 힘없는 여성을 농락한 사건이다. 버닝썬 사건은 마약까지 복용한 혐의가 있고, 장자연 사건은 힘 있는 신문사 사주(社主) 가족까지 연계된 사건이다. 돈과 권력, 섹스와 마약은 인간을 취하게 하는 마약이다. 돈과 권력, 성(性)은 인간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활력소로 양심과 상식과 법규범 안에서 건강하게 취득하고 활용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악(惡)은 달콤하지만 파멸을 가져온다. 선(善)은 물처럼 밋밋하지만 상생(相生)을 가져온다. 이것이 진리다.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김윤호 논설위원·행정학 박사·국회출입기자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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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호 주필 / iho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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