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이 한 팀을 이뤄 복식 경기에 나선다. 생활체육대회나 학교 운동회가 아니다.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종합선수권대회에서 곧 벌어질 일이다.

당장 다음 주면 국내 스포츠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부자(父子) 복식 조의 역사적인 경기가 열린다. 탁구의 오상은(39·KDB대우증권)-오준성(10·오정초) 부자가 마침내 소원을 이뤘다.

오상은-오준성은 오는 16일부터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리는 제70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에 남자 일반부 복식에 참가 신청을 했다.

오상은은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남들 한 번 나가기도 힘든 올림픽 무대를 4번(2000·2004·2008·2012년)이나 밟은 것도 모자라 세계선수권에서는 10차례나 입상했다.

준성군은 오상은의 둘째 아들로 경기도 오정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탁구 꿈나무다. 아빠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덕분인지 또래들에 비해 늦게 탁구채를 잡았지만 올해 초등학교 4학년 랭킹 1위에 올랐다.

오상은은 예전부터 아들과의 복식 조를 희망했다. 이는 몇 차례 은퇴 위기에도 현역 연장의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준성군이 일반부에 나서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

그들의 바람은 2017년을 한 달 앞두고 극적으로 성사됐다. 대한탁구협회는 최근 한국초등학교탁구연맹의 요청을 받아들여 초등학교 4~6학년 랭킹 1위 선수의 종합선수권 참가를 허락하기로 했다.

오상은은 8일 뉴시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부자 복식조는 탁구 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다. 아마 세계적으로 없을 것이다. 내가 선수 생활을 그만두기 전에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목표를 이뤘다. 무척 설렌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대한탁구협회 관계자는 부자 복식조 구성에 대해 "국내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오상은 역시 최초라는 점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내년이면 만 40살이 되는 오상은은 "난 경기에 나설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뛴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시합을 아들과 함께 하는 것인데…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렵다. 정말 감동스럽다"고 털어놨다.

오상은의 아들 사랑은 탁구계에서는 익히 알려져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끝으로 태극마크에 작별을 고한 오상은이 올해 초 탁구 국가대표 상비군 선발전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아빠는 탁구를 잘 치는데 왜 국가대표가 아니야?"라는 아들 준성군의 한마디 덕분이었다.

오상은은 "아빠가 태극마크 다는 것을 보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대표 선발전을 뛰었다. 비록 상위 5명에는 못 들었지만 상비군에 들어서 뿌듯했다"고 떠올렸다.

준성군은 아빠와의 동반 출전에 벌써부터 신이 났다. 주말마다 아빠와 동네 탁구장에서 자웅을 겨루지만 성에 차지 않는 모습이다.

"나보고 자기 학교로 와서 복식 연습을 같이 하자더라"고 껄껄 웃은 오상은은 "나도 소속팀이 있어서 직접 가기는 어렵다. 하지만 수요일 오후에는 팀 운동이 없는 날이라 다음 주에 가볼까 고민하고 있다"고 살짝 귀띔했다.

아버지가 아닌 탁구 선배로서 준성군을 평가해 달라는 말에 오상은은 "냉정하게 봤을 때 재주가 없는 것 같지는 않다"고 은근슬쩍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는 이어 "랭킹 1위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자질은 좀 있는 것 같다. 탁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 지니고 가면 기대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한국 탁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역사적인 부자 복식조의 발걸음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모두 출전하는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초등학생과 팀을 이뤄 단계를 밟아가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물론 출전만으로도 대성공을 거둔 아버지와 아들에게는 쓸데없는 고민일 뿐이다. 오상은은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들과 같이 한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살며시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