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몰린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의 선택은 '파격'이 아닌 '익숙'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31일 오전 10시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달 11일 캐나다와의 평가전과 1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에 나설 25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익숙한 명단의 중심에는 이정협(울산)이 있다. 지난 3월27일 태국과의 평가전 이후 자취를 감췄던 이정협은 8개월 만에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이정협은 '원조 슈틸리케호의 황태자'로 군림했던 선수다. 2014년 말까지만 해도 발전 가능성을 갖춘 2부리그(상주 상무) 선수에 불과했던 이정협은 슈틸리케 감독을 만나 대표급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이정협이 재차 부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슈틸리케 감독에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의 플레이 스타일이 대표팀의 추구하는 바와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25m~30m 지점까지 빌드업을 통해 가고 있지만 그 이후 뒷공간 침투나 2대1 패스 등을 좀 더 보여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유형의 선수를 찾다보니 이정협이 떠올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또 다른 최전방 공격수인 김신욱을 '플랜B'로 특정했다. 이정협 혹은 황희찬(잘츠부르크)은 자연스레 '플랜A'가 된다는 의미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정협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정협의 올 시즌 행보는 썩 좋지 않다. 울산 현대의 최전방을 책임지고 있는 그는 K리그 클래식 29경기에서 4골1도움에 그쳤다. 미드필더가 아닌 포워드의 성적이라고 보기에는 초라한 수준이다.

최근 들어 움직임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소신과는 거리가 먼 선발인 것은 사실이다.

이에 슈틸리케 감독은 "득점과 공격 포인트로 공격수를 평가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좀 다른 방식으로도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정협을 처음 대표팀에 부를 때 그는 상주에서도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 우리가 원하는 움직임과 추구하는 스타일의 선수였기에 뽑았다. 울산에서는 열심히 뛰지만 기회가 잘 찾아오지 않아서 득점은 많이 못했다. 그래도 우리가 원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기에 선발했다"고 두둔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25명의 선수로 캐나다와의 평가전을 치른 뒤 23명을 추려 우즈베키스탄전을 소화할 계획이다. 이정협이 2명의 살생부 명단에 포함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우즈베키스탄전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가늠할 중요한 한 판이다. 슈틸리케 감독과의 동행 여부까지 결정할 수 있는 경기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다시 한 번 이정협에게 손을 내밀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운명이 이정협에게 달렸다.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캐나다-우즈베키스탄전 소집 명단(25명)



▲골키퍼 =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권순태(전북) 김승규(빗셀 고베)



▲수비수 = 김기희(상하이 선화) 장현수(광저우 푸리) 홍정호(장쑤) 곽태휘(서울) 김창수 최철순(이상 전북) 박주호(도르트문트) 윤석영(브뢴뷔) 홍철(수원)



▲미드필더 = 정우영(충칭 리판) 김보경(전북) 한국영(알 가라파) 손흥민(토트넘) 이재성(전북)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 기성용(스완지시티) 남태희(레퀴야) 구자철 지동원(이상 아우크스부르크)



▲공격수 = 황희찬(잘츠부르크) 이정협(울산) 김신욱(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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