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무너지는 한국 교육'

 

 한국의 교육문제만큼 풀기 어렵고 오래된 문제도 드물다. 한국 교육은 세계적인 관심사이기도 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국 교육에 대한 칭찬과 부러움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교육열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2009년 3월 오바마는 “미래는 시민을 가장 잘 교육하는 국가의 것”이라며 “미국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보다 매년 학교에서 한 달 정도를 덜 보낸다. 이렇게 해서는 21세기 경제 시대에 대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10년 2월 백악관에서 주지사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한국 부모들은 자녀들이 수학, 과학, 외국어 등 가능한 모든 것을 다 잘하기를 원한다. 교육을 잘 시키는 나라가 미래에 미국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자녀들이 뛰어나길 원한다”고 부러워했고, 2010년 12월에는 “한국은 영어교사까지 외국에서 들여온다”며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칭찬했다.

특히 2011년 1월 신년 국정연설에서도 한국 교육을 거론했다. 그는 “부모 다음으로 아이들의 성공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교사다. 한국에서는 교사가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로 불린다”며 “미국에서도 교육하는 사람들을 그와 같은 수준의 존경심으로 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교육이 과연 미국이 부러워할 만큼 우수한 수준이고, 미국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효율적인 시스템인가.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겉모양만 보고 평가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한국교육이 세계 최고라는 명성의 이면에는 그에 못지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열이 세계 최고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천연자원이 빈약한 나라가 반세기 만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서게 된 것도 교육열 덕분이다. 지독한 교육열이 우수한 인력을 양성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견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후진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도달한 유일한 나라가 된 것이 교육의 힘이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교육열이 21세기에도 국가발전에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 얘기하지 못한다. 개발 연대에는 높은 교육열이 인재를 길러내 국가발전을 이끌었지만, 앞으로도 그러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교육수준이 높고 교육열이 세계 최고 수준인 건 맞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런 불안한 시스템으로 21세기의 국가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해낸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교육학자들의 솔직한 견해이다.

특히 공교육의 붕괴 현상은 심각함을 지나 망국적인 상황이다. 미국을 자주 다녀본 사람들은 “한국이 오히려 미국의 공교육을 부러워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요즘 온 나라를 뒤흔든 학교폭력과 ‘왕따’ ‘이지메’ 현상은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이 이미 붕괴된 상태임을 증언하고 있다. 공교육의 붕괴와 학교폭력 및 왕따 현상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이다. 공교육이 붕괴됐기 때문에 폭력, 왕따, 교권상실 등의 현상이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병폐인 공교육 시스템의 붕괴는 그간 언론을 비롯해 각 시민사회단체에서 누누이 지적하고 비판을 해온 부분이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학교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크게 의존하게 됐다. 이로 인해 사교육비 부담이 가정경제를 압박하고, 전체 국가경제의 정상적인 흐름까지 왜곡시키는 것은 물론, 소득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갈등의 근본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2010년 연간 사교육비 부담은 21조원이나 된다. 통계청의 2010년 집계에 따르면 학생의 성적수준과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른 사교육비 지출 규모에 큰 차이가 드러났다. 성적이 상위 10% 이내인 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31만5000원으로, 하위 20% 이내 학생의 12만9000원에 비해 2.4배다. 또 월 소득이 700만원 이상인 가정의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47만4000원, 월 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가정은 5만4000원으로 8.78배라는 큰 격차를 보였다.

교육이 예전엔 신분상승의 기회, 출세의 발판이 되면서 계층이동을 가능케 했으나 지금의 교육은 경제력이 좌우한다. 부유한 계층은 서민들로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막대한 돈을 들여 맞춤형 고액과외, 족집게 수능 및 논술과외 등으로 자식들의 학력을 끌어올려 대학 진학에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

열심히 벌어서 자녀교육에 투자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부모의 경제력 격차로 인해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하위 계층의 인생역전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셈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신분과 경제력에 속박됨으로써 상위계급으로 올라갈 인생 2라운드를 뛸 희망을 상실하게 된다. 기존의 상위계층이 교육의 기회를 독점함으로써 ‘사다리 걷어차기’를 했다는 게 성립된다.

최대의 문제는 공교육의 붕괴이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학교수업이 재미없어 낮잠을 자고, 공부 못하는 아이는 좌절감에 수업에 흥미를 느낄 수 없다. 이들은 공부는커녕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끌어내리고 왕따시키는 일에 학교 가는 재미를 느낀다.

학력차를 무시하고 같은 교실에 모아놓고 가르치다 보니 교사도 어디에 기준을 두고 가르쳐야 할지 난감하다. 수준이 높고 경제력을 갖춘 집안 학생들은 이미 학원과 과외공부로 선행학습 했으니 학교에선 다른 공부를 하거나 밤늦게까지 학원 다니느라 모자라는 잠을 보충한다. “학교수업만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에 들어갔다”는 말은 이미 신화가 돼 버렸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런 것들이 ‘평준화 교육’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1974학년도부터 시행된 고교 평준화 정책이 ‘학벌을 철폐하고 소년기 아이들의 입시지옥을 해소시켜주자’는 목적 달성에는 실패하고, 대신 전체 학교교육의 붕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중고교 입시를 부활하거나 되돌릴 수는 없다면 충분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경기고교 졸업생인 모 기업 부사장 안병만(59)씨는 “어차피 자본주의건 공산주의건 사회는 경쟁체제이므로 일찍 입시경쟁을 치르는 것도 교육이다. 일단 중학교나 고교를 원하는 데 들어가면 요즘처럼 그렇게 심한 과외는 하지 않아도 된다”며 고교입시 부활 지지론을 폈다.

우리나라는 유아기 때부터 시작되는 모든 교육이 대학입시로 귀결된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학벌에 끼어들 수 있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안정적 사회생활이 보장된다는 공식이 유효한 이상 입시위주의 교육이 바뀌기는 불가능하다. ‘인격을 도야하고 민주시민의 기본 소양을 길러준다’는 학교 교육의 목적이 실종됐으니 전인교육(全人敎育)이 실현될 리가 없다. 학교는 단순히 입시를 위한 지식을 전해주는 학원쯤으로 추락함으로써 갖가지 병폐가 불거지는 것이다.

학교폭력 문제는 지난 십여 년간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도 교육당국이나 행정부처 경찰 등 관련 기관들은 사건발생 때만 부산을 떨 뿐 어느 한 곳에서도 근본적인 대안을 만들어내지 않고 있다. 매년 전국 곳곳에서 학교폭력과 왕따에 자살하는 아이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 문제는 학교와 교사들도 대부분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냥 못 본체할 뿐이라는 것이다. 서울의 한 고교 교장은 “최근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 보도된 초중고교의 실태가 모두 사실이다. 다 알고 있어도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그는 “문제 학생은 선생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야단을 쳐도 실실 웃으며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라며 자신들도 답답하다”고 나름대로 애로사항을 털어놓는다.

교사들은 잠을 자거나 교실에서 장난치고 휴대폰 문자 보내기로 수업분위기를 망쳐도 대부분 야단치지 않는다. 왕따 당하고 일진 패거리들에게 상습적으로 집단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게 현실이다. 교사들은 “문제 학생들을 제어하기 어려워 방치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 겸 하소연한다. 체벌이 금지돼 있고, 퇴학시키지도 못하는 교사를 폭력학생들이 만만하게 보기 때문이다. 교권이 추락한 우리 교육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육행정 당국은 수십 년간 입시제도만 만지작거리며 이랬다저랬다 할 뿐 진정한 교육개혁은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정부에서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교육개혁위원회를 가동 중이지만 신통한 개혁안을 내놓을 걸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얼마 전 학교 폭력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국민세금을 들여 강원도 바닷가로 세미나를 나간 장학사, 경찰관 등 수십 명이 세미나는 형식적으로 해치우고 술판에 주력해 학부모들의 공분을 산 일이 있었다. 지난 1월13일 케이블TV 채널A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 학교폭력 전담 장학사 13명, 서울시교육청 산하 Wee(상담센터) 직원 22명, 서울경찰청 소속 학교 전담 경찰관 11명 등 공무원 약 50명은 학교 폭력 처리를 위한 워크숍을 한다고 멀리 강원도 인제까지 가서는 술판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들은 1박2일 동안 세미나는 달랑 3시간만 하고는 관광버스 2대에 나눠 타고 동해바다가 보이는 속초의 전망 좋은 바닷가 횟집으로 달려갔다. 1층을 전부 차지하고 벌인 생선회 술판은 4시간이 넘게 계속됐다. 술자리 후 먹고 마시고 남은 건 다시 차에 실었다. 속초 특산물이 담긴 봉투 하나씩 챙겨 숙소로 돌아갔고, 다음날엔 아침식사 후 정오까지 특별한 일정 없이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지금 전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는 학교폭력 대책을 머리를 싸매고 토론하고 연구해도 시원찮을 담당 공무원들이 임무는 팽개치고 국민세금으로 술판에 주력했다는 소식에 국민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처벌받았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학부모 김모씨는 “담당 공무원들이 밤낮 이 모양이니까 학교 폭력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간 학교폭력 문제가 터질 때마다 대책을 만드느니 어쩌니 요란만 떨었지 해결된 게 뭐가 있느냐. 요즘에 학생이 여러 명이나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했는데도 공무원들이 그 문제 해결책 만든다는 핑계로 예산 타내서 먹자판이나 벌이니, 이번에도 반짝하다 금방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 뻔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고교생 자녀를 둔 또 다른 학부모 이모씨(서울 송파구)는 “자기 자식이 폭행당하고 성추행 당했다면 이러지 못했을 거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고통을 잘 알만한 공무원들이 관광여행 간 듯 술판이나 벌이고 있으니 무슨 해법이 나올 수 있겠나. 공무원이 돼서 정도에 벗어나는 공무원들은 가차 없이 옷을 벗겨야 한다”고 흥분했다.

교육개혁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매년 수만 명씩 조기교육을 떠나,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고, 연간 수억 달러가 자녀 유학경비 송금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명지대 청소년 청소년연구센터 성인제 박사(교육학)는 “사교육비와 조기 유학비를 제도권 교육으로 환류한다면, 한국이 세계 최고의 교육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해낼 수준 높은 교육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